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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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21:52 | 최종 수정 2024.12.1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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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중구 어남동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에서 8일 오후 10시반에 박희정 아나운서 사회로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44주년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입구 방명록에는 방문객이 작성한 후 팜프렛 받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대화들을 하고 있었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 어남리(현/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어 관직에 나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며 본격적으로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했다.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위원으로 참가해 신민회의 의념을 논설에 반영하는 등 역할을 수행했다. ‘독사신론’을 비롯한 많은 역사관련 서적을 저술하며, 근대민족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집필 등 역사연구에 힘쓰는 한편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대만으로 가다가 일제에 체표돼 여순(뤼순)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옥사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현재 동구에 위치한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는 그가 태어나 8살때까지 생활하며 유년기를 본낸 곳이다. 1992년 효율적인 보존을 위해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생가를 복원했으며,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대전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방문객들에게 선생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식전공연으로 산성동 풍물단 공연이후 김광선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이 단재 선생 약력소개가 있었다.
박헌오 시조시인과 노금선 시인의 시극과 김제선 중구청장의 헌사, 노덕일 대전중구문화원장, 이장우 시장을 대신하여 김경훈 정무수석, 장효정 대전보훈청장 직무대리, 오은규 중구의회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DMC어린이합창단의 단재의 노래 이후 내빈과 참석자들이 헌화를 했다.
이날 행사는 단재 선생 손부 장소영, 증손 신정윤 등 각계의 인사들 약1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가 종료되고 대전라온로타리클럽과 서리서리봉사단이 준비한 떡국 중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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